구병모, 바늘과 가죽의 시詩
“빨리 가서 신겨봐야겠다.”
흥분과 기쁨으로 서둘러 상자 뚜껑을 닫는 미아의 어깨를 잡아채듯이 안은 말하고 만다.
“나는 이해할 수 없어. 그 사라지는 걸⋯⋯.“
그리고 그 불가해의 원인이 되는 감정을 뭐라고 명명하면 좋을지를. 그때 안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알에서 갓 태어난 참새만 같던 모카신이다. 안의 한 손에 한 켤레가 다 올라가고도 남을 만큼 작고 작은 아기 신발. 돌아서던 시인의 모습이 안의 가슴속에 얼룩처럼 배어 있다. 사라질 것을 알면서 곁에 두겠다는 걸, 이해하고 싶지 않다. 신을 사람이 없는데도 끝까지 모카신을 완성하는 마음을. 필멸하는 순환이라는 이름으로 떠나고 돌아오고 떠나기를 반복하는 자연의 섭리를. 그러나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따로 있다. 자신이, 미아가, 왜 아직까지 이런 형태로 살아 있는지를. 어쩌면 신은 존재로 하여금 또 다른 존재와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해하고 싶은 강렬한 소망과 그것이 충족되지 않는 데서 비롯한 절망만을 존재 안에 배열했을 뿐.
⋯
“아까 네가 했던 말 있잖아.”
미아는 그 언젠가 다른 배를 타고 떠나겠다고 결심했던 날처럼 거의 날카롭다고 할 만한 명쾌함과, 자신의 선택에 대한 만족감으로 빛나는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사라질 거니까, 닳아 없어지고 죽어가는 것을 아니까 지금이 아니면 안 돼.”
구병모, 바늘과 가죽의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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