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아, 우리는 실존주의 강의를 들었지
일 년 중 가장 따스했던 날
우리는 실존주의 강의를 들었지.
교정에 목련은 만발했고
학습의 목표는 실존이었어.
우리의 우상은 한결같이 카뮈였지만
우리에게 실존은
등록금 고지서에 인쇄된 우주의 크기였지.
배가 나온 교수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늘
라테의 거품을 한입에 빨아들였고
목련은 너무나 빨리 지고 말았지.
우리가 강의실에서
실존을 찾아 헤매는 동안
우리 중 한 명은 실존의 밖으로 사라졌지.
중거 하나 남기지 않은 채 그는,
실존을 조롱한 거야.
건물의 옥상은 패자를 위해 늘 비어 있었고
우리는 인문학 저서를 덮어 버렸지.
꿈을 위해 꿈을 덮는
실존의 아이러니를 배웠지.
황수아, 우리는 실존주의 강의를 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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