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 486
Kreisler: Liebesleid (arr. Rachmaninoff)
김이듬, 싱어송라이터



  네 노래가 나에게 힘이 될 리 없지만 네 노래가 나를 위로하거나 어루만지지 않지만 혼자인 건 나뿐인 거 같을 때 나를 모서리로 몰아가지만

  장미도 데이지도 페퍼로미아도 없는 창가에서 광장이 보이는지 저분한 창가에서 비스듬히 앞 방의 벗은 두 남자가 보이던 레코드판만한 창을 열고

  네가 부른 작은 노래를 다른 데서는 부르지 말아줘

  네 노래는 공사가 덜 끝난 공장의 깨진 벽돌 같아 망한 옷가게 커튼 뒤 쓰러진 마네킹 같거든 밤의 횡단보도 앞에서 파는 럼과 바닐라를 첨가하지 않은 젖은 페이스트리 같아도

  네가 내게 불러준 그 작은 노래를 기억할게 다른이의 마음을 흔들지 말아줘

  최악의 언덕이었고 시체가 떠오르는 저수지였고 내게도 마음이란 게 있다면 네 노래를 들을 때뿐 비합리적으로 너를 사랑해 부조리하게 너를 사랑해 사람의 모순이 사랑을 만들어 나머지 모든 것은 내게 소용 없네

  네 노래는 나를 의심하고 네 노래가 없었던 나의 모든 날들을 환멸하네 네 노래가 사라질 모든 날들을 환멸하지 짐작이 의심보다 무서웠어 보드 타던 애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다친 광장에서 너는 노래하고 싶었다네

  천둥소리를 녹음했지 언제나 주위에 있는 어둠이 더 짙어지던 밤에 폭우를 녹음했어 너는 창가에서 이제는 사라진 가스등처 럼 흐릿했네 옛날 가게 마네킹처럼 눈코 없이 울고 있었어

  점등원은 올 리 없고 광장에서 언덕에서 저수지에서 정원에서 우리가 아침 식사를 함께할 리가 없겠지만 나는 네 노래를 사랑 했어 매일이 폭풍 전야이기를 바라 태풍 경로 속에 내가 있기를

  나에게 너는 표를 사 준다 통로 좌석과 창가 좌석 중에 어디가 좋은지 묻지 않는다 노래에 기대하던 모든 것을 느끼게 해준 너 는 나의 절망 나는 눈먼 여자 수난 없는 사랑을 알지 못하네 지진 없는 대지의 노래를 믿지 못하네

  네가 부른 그 작은 노래 네가 부른 나의 노래를 나만 듣고 싶었지만 어떡하면 좋을까 네게 창과 통로 낮게 뜬 달도 주고 싶으 니 젖은 토양과 작열하는 태양과 차가운 밤의 나의 시신까지

  내게 불러준 너의 작은 노래를 어떡하면 좋을까


김이듬, 싱어송라이터

yunicorn